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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박 자르기
    살림일기 2020. 6. 26. 00:34

    나는 수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못 먹는 건 아니지만 굳이 찾아먹지 않는다.

     

    오늘 신랑과 장보러 홈플러스에 갔다. 내가 내일 먹을 어묵탕에 들어갈 마침 똑 떨어진 다진 마늘을 살펴보는 동안 신랑은 과일코너에 가 있었다. 아주머니들 속에 수박을 시식하겠다고 서 있는 신랑이 보였다.

    한 입 베어물고 나에게 온 신랑에게 '수박 살까?'라고 물었다. 신랑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달 생활비가 조금 부족한 상황에서 속으로 '그래 좀 아껴보자'라고 생각하며 마트에서 나왔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 커플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지하철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각자 스마트폰을 만지다가

    슬쩍 신랑의 폰을 살펴봤다.

    '수박 사고싶다'

    신랑이 친구에게 보낸 카톡 내용. 

    마음이 아팠다ㅠ 신랑의 팔을 붙잡고 '수박 사먹으면 되지~ 왜!!'라며 말했다.

    때마침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며 속으로 '꼭 수박 사야겠다'라고 다짐한다.

     

    즐겁게 모임을 끝내고 집 앞 지하철역 앞에서 '산책하자'고 신랑에게 제안했다. 간만에 동료랑 회사 이야기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눠서 기분이 좋은터라 이대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신랑이랑 손잡고 걸으며 이야기 나누다가 신랑 왈 '뭐 사야된다고 안했어?'

    오전에 마트에서 빵을 사지 않고 오늘 저녁에 모임장소에서 가까운 맛있는 빵집에서 빵을 산다는 걸 기억한 모양이다.

    동네의 파리바게트로 향했으나 내가 원하는 바게트나 모닝빵이 없었다.

    흠.. 고민하던 나의 뇌리를 스친 것 '아 맞다 수박!'

     

    신랑의 손을 잡고 홈플러스로 가서 덜 맛있겠지만 하나 남은 바게트와 요리조리 살펴보고 맛나 보이는 수박을 샀다.

    (참고로 검색해 보니 수박 밑부분의 동그란 부분이 작은 수박이 달다고 한다)

    나는 가볍게 바게트를 들고, 신랑은 이마에 송글 땀이 맺혀가며 무거운 수박을 들고 집에 왔다.

     

    수박을 좋아하지 않아.. 잘라본 적도 없는 나는 이 큰 수박을 바로 자르고 싶었다.

    엄마 어깨 너머 보았던대로 수박의 겉면을 식초물로 세척하고 반을 크게 잘랐다. 수박은 단단했지만 생각보다 잘 잘렸고 약 2/3정도 자른 후 손으로 양쪽을 벌리니 쩍하고 벌어졌다. 수박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도 달콤한 향이 났고 그 순간 흐르는 수박 국물(?)은 흡사 수박의 피 같았다ㅋ

     

    신랑은 그냥 2동강 난 수박을 넣어두고 먹고 싶을 때마다 숟가락으로 퍼먹겠다고 한다. 난 이해가 가지 않고 혹여나 냉장고에서 수박 물이 흐를까봐 그건 너무 싫었다. 특히 입 댄 숟가락으로 수박을 퍼먹고 다시 냉장고에 넣고 또 다시 꺼내 먹겠다니.. 

    난 다 잘라서 반찬통에 넣겠다며 신랑에게 윗 선반에 있는 반찬통을 꺼내달라 했다. 우리집(엄마집)에서는 수박을 반 자른 후, 반은 잘라서 먹기 편하게 반찬통에 넣어두고 나머지 반은 다음에 먹을때 잘라서 통에 넣었다.

    내가 엉성하지만 열심히 수박을 자르고 있으니 뚝뚝 떨어지는 수박 국물을 보며 신랑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날파리가 난리겠네'

    순간 화가 났다.

    '그럼 어떻게 해?' 하며 신랑을 째려보니.. 어머님은 퍼먹게 하거나 잘라서 지퍼팩에 넣으셨단다.

    '내가 누구땜에 좋아하지도 않는 수박을 샀는데, 혹은 그럼 니가 잘라!'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좋은 게 좋은거라고 좋은 부분만 수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부족했던 반찬통에는 담을 만큼의 수박만 넣고 나머지는 잘라서 지퍼팩에 넣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랑은 열심히 내 옆에서 떨어지는 수박 국물을 닦고, 반찬통을 넣고, 바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러 간단다.

    또 살짝 기분이 풀려 신랑 입에 자른 수박을 2~3개를 입에 넣어준다.

     

    우린 대략 10년을 사귀고 결혼했지만 그래도 몰랐던 부분도 많고 맞춰가야 할 부분이 많은 거 같다.

    나는 손톱을 큰 전단지 혹은 휴지를 깔고 그 위에서 자른다. 신랑은 샤워하면서 손톱, 발톱을 자른다. 처음에 신랑은 나에게 손톱이 다 튄다며 이야기했고, 난 물에 젖은 손톱깍기가 약간 녹 슨 것을 보며 별로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달랐던 부분이 무의식적으로 각자의 생활패턴을 존중하는 것으로 마무리됬다. 나는 여전히 손톱을 종이 위에서 자르고, 신랑은 샤워 중에 자른다. 물론, 서로 약간 눈치는 보는 것 같다ㅋ

     

    이처럼 수박자르기, 손톱자르기 등 사소하지만 알게 되는 서로의 차이점을 보면 그 때는 서로 눈을 찌뿌릴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정리되어 있는 것 같다. 

    하긴, 맞고 그른 기준이 어디에 있을까? 

    그냥 각자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보고 따라 배운 모습인데.. 뭐 죽고 사는 일 아니면 존중해주자.

     

    그리고 수박자르는 것처럼 결국은 투덜대도 함께 마무리할 수 있으니까.

     

    당분간은 냉장고의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나도 열심히 수박을 같이 먹어야 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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